먼저 밟으시는 언니들이여
푹푹 디디어서 뚜렷이 발자취를 내어주시오.....
다행히 누가 먼저 밟아놓은 발자국을 따라 길을 찾게 되었소만은 그 사람도 몇군데 헛디딘 자국이 있는 것을 보니 이 두꺼운 눈을 한번 밟기도 발이 시리거든 그 사람은 길을 찾노라고 방황하기에 얼음도 밟게 되고 구렁에도 빠지게 되었으니 아마도 그 사람의 발은 꽁꽁 얼었을 것 같소. 동동 구르며 울지나 아니하였는지 몹시 동정이 납네다.
그러나 발자국을 따라 반쯤 올라가니 그 사람의 간 길과 나 가고 싶은 길이 다르오 그래. 나도 그 사람과 같이 두껍게 깔린 눈을 푹푹 딛어야만 하겠소. 차디찬 눈이 종아리에 가 닿을 때에는 선득선득하고 몸소름이 쭉쭉 끼칩데다.
큰 돌멩이에 발부리도 채고 굵은 가시가 발바닥도 찌르오. 이렇게 벌써 걸음을 옮기기가 곤해가지고야 언제 저기를 올라간단 말이오......아무려나 미끄러져서 머리가 터질 각오로 밟아나 볼 욕심이오.
-정월 나혜석의 '잡감'중에서
(1917년 봄 도쿄에서 발행된 조선유학생들의 동인지 <학지광>12호에 실은 여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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