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처럼 짧은 팔을 붕붕거리며
잘도 뛰어놀던 아이들
때로는 개미처럼 잘 맞지도 않는
줄을 지어 국민체조를 하던 아이들
그 운동장에 이제 벌 개미떼 같던
아이들은 없고, 못내 보고 싶어
산을 내려온 건지, 아니면
누가 그리움으로 심어 놓았는지
폐교에는 꽃만 우거졌다
벌개미취, 연보랏빛 아스라이
추억컨대, 여기는 함양군 안의면
대지국민학교였다. 덕유산 심원동
초입의 이 학교엔 이영준, 김용태,
이남주, 이희숙, 차경주……
또 누구였더라?
이제는 이름조차 가물하고
어디서 무얼 하며 살고 있는지
도대체 안부 또한 알 수 없는
그 새까만 아이들이 다녔다
하필 비 붓는 이 여름 나절에
나는 이 폐교에 와서 공연히
가슴을 적시나니, 그립다
개미 같던 그 아이들 지금도
세상의 대열 어느 한 꽁무니를
놓치지 않고 따라가고 있을까.
혹은 벌처럼 그 짧은 날개를
내려놓지 않으려고 붕붕거리며
살고는 있을까
이름조차 없어져
행여 살다가 찾아오기도 힘들
이 대지국민학교에 오늘은
다니는 벌도 개미도 없이
빗속에 아스라한
연보랏빛 꽃만 피어
벌개미취
-오인태, <대지국민학교 벌개미취> 전문, 시집『등뒤의 사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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