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이바구들/남들이 하는 이바구

고주몽의 혈통관계,소서노,고무서의 딸....

여경(汝梗) 2006. 5. 21. 23:23

어디에선가 펀 글인데....왜 펏냐구?

소서노가 연타발의 딸이라는 기록과

고무서단군의 딸이란 이야기 이렇게 두가지 사이에서

오히려 아래 퍼온 이 글이 나를 가장 개운하게 해 줬기 때문에....

가장 맞는 소리같아서....

 

 

고주몽은 북부여 황제 해모수의 아들 고진의 자손인

고모수와 유화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의 정통혈통입니다.

 

주몽이 태어나기 전의 역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북부여는 4대째인 고우루 황제 때에 이르러 스스로 동명왕이라 칭한

영웅 고두막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가섭원에 따로 동부여를 세웁니다.

 

고두막은 북부여 대신 졸본 부여라는 국명을 선택하고

그의 아들 고무서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르지요.

고우루의 동생 해부루가 가섭원에 세운 동부여는 해부루의 아들인

금와황제에 의해 다스려지고 있었구요.

 

주몽의 아버지 고모수는 당연히 금와왕의 먼 친척뻘로서

비록 실권을 갖지는 못했으나 그 혈통 때문에 누구도 무시하지 못한는

권위를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그가 유력자인 하백의 딸 유화와의 사이에서 주몽을 낳자

주몽은 금와황제의 아들인 대소황태자를 위협할만한 존재로

견제를 받지요.

 

이런 핍박 탓에 그는 약관의 나이로 동부여를 탈출해

졸본부여로 망명하게 되고 마침 고령에 후사가 없음을 고민하던 졸본황제 고무서는

자신의 딸과 주몽을 결혼시키고 BC 58년, 주몽에게 보위를 물려준 후 병사합니다.

물론 해모수의 혈통인 동부여 왕실에 비해 떨어지는 혈통적

정통성을 해모수의 혈통인 주몽을 통해 극복하려는 계산도 있었지요.

 

하지만 황비인 고무서의 딸 (이하 그냥 졸본공주라고 함)은

주몽을 들러리로만 삼은 채 정권을 좌우하려고 하게 되고

결국 주몽은 왕비 및 졸본 토착귀족에 맞서기 위해

만주 일대의 유력자인 연타발의 딸과 혼인하게 됩니다.

이 연타발의 딸이 바로 유명한 여걸 소서노입니다.

 

당연히 이전의 부부의 정이고 뭐고 다 사라진

주몽과 졸본공주는 갈라서게 되고 주몽과 소서노는

쿠데타를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 남쪽으로 도망가게 됩니다.

 

황비일파를 제거하려다가 도망간 들러리 황제 주몽대신

주몽과 졸본 공주의 아들인 아달황제가 섭정인 어머니 밑에서

제대로 들러리를 서게 된 것이죠. 하지만 병약한 아달황제는

오래가지 않아 의문의 죽음을 맞게되고 나라의 유일한 실권자인

졸본공주는 금와왕과 혼인하여 동부여와 졸본부여를 한 나라로 통합합니다.

갈라졌던 부여가 국혼을 통해 통일된거죠.

 

한편 그 사이에 남쪽으로 도망갔던 주몽은 장인인 연타발의 부와

부인인 소서노의 수완에 힘입어 그 땅에 기반을 잡고 결국 작은 나라인

고구려를 세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작은 나라는 주몽의 리더쉽과

소서노의 지략에 힘입어 순식간에 급부상하면서 부여를 압박할 만큼 성장하지요.

 

여기서부터 족보가 복잡해지는데요.

소서노는 주몽에게 시집오기 전에 이미 우태란 귀족과 결혼을 했었고

그 사이에서 이미 아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비류입니다.

그리고 주몽과의 사이에서 나은 둘째가 바로 온조입니다.

 

한편 주몽은 젊어서 동부여를 탈출 하기 전에 이미 어머니인 유화부인이

정해준 예씨라는 미인과의 사이에서 유리라는 아들을 가지고 있었죠.

 

문제는 갑자기 급부상한 고구려의 예봉을 피하고 화친을 도모하기 위해서

유화부인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름으로서 화해 제스쳐를 보낸 것은 물론,

볼모나 다름없이 지내던 예씨와 유리를 고구려로 보내 온 것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주몽이 동부여에 있을 때 예씨와의 사이에서 낳은 큰 아들이 유리.

졸본공주와의 사이에서 낳은 둘째가 친위쿠데타 실패로 도망친 주몽을 대신해 들러리를 서다 죽은 아달왕 

친아들이 아닌 소서노의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셋째가 비류,

그리고 소서노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넷째가 바로 온조가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미 너무 커져버린 소서노의 영향력과 수완을 두려워한 주몽은

소서노와 그 두 아들을 경계하며 공공연연히 유리를 후계자로 선언했고

이 배신에 떠밀려 남하한 소서노와 그녀의 두 아들 온조, 비류가 세운 나라가 바로 백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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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와황제의 아들인 대소가 보위를 이은 부여는

부여에서의 볼모시절의 한을 갚겠다는 듯 몰아치는 유리황제의

공세에 밀려 결국 AD22년 유리황제의 아들인 대무신황제의 손에 멸망하게 됩니다.

 

한편 전남편 주몽을 축출하고 금와황제와 재혼하여 부여를 통일한

졸본 공주는 금와황제와의 사이에서 요망이라는 아들을 낳게 되고

이 아이가 부여가 망하기 직전인 AD21년 갈사국을 세워 여러 대를 버티다가

결국 고구려에 의해 멸망당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