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했던 직장/진주문화연구소

진주문화현장 답사-진주성

여경(汝梗) 2011. 10. 14. 14:54

 

오늘 9월 29일은 진주문화현장실습 겸 답사하는 날!

우선 진주성 공북문앞에 모였습니다.

10시까지 모이기로 했는데 비가 와서인지 조금 늦는 분들이 계셔서 지체되고 있습니다.

오늘의 강사는 성재권선생님이십니다.

문화해설사 장일영선생님께서 진주성에 대한 소중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셨습니다.

공북문이라는 이름은 전국에서도 많이 찾을 수 있는데

임금님이 계시는 북쪽을 향해 공근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군요.

대체로 진주시민들은 북문이라고 이름부르는데, 이름을 바르게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남포정사, 지금으로 치면 도청 정문입니다.

역사의 숨결과 맥박이 느껴집니다.

 경상우도의 관찰사가 근무하던 곳이 진주였는데...

요즘 도청2청사를 진주로 가져오고자하는 운동이 있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남포정사 남쪽 아래편에 있는 하륜대감의 생가터라고 합니다.

태실지라고도 하는데 늘 무심코 지나쳤었습니다.

여기서 조선도읍지를 정할 때의 일화들을 다시 들었습니다.

비가 와서 우산을 들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필기가 용이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열심히 적는 분들이 참 많았습니다.

이곳에 서면 늘 마음이 저려옵니다.

임진년, 3대대첩의 하나이면서도 가장 위대했던 전투 '진주대첩'!

계사년, 왜의 철저히 계산된 침입에 7만명이 숭고하게 숨진 '계사순의'!

우리는 먼저 묵념을 드렸습니다.

임진년과 계사년의 이야기를 품고 살아온 진주성......

선종과 선조, 명칭이 다르지만 한 분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무식해서는 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배웠습니다.

동입서출, 동문으로 들어가서 서문으로 나온다는 상식을 배웠습니다.

실제 방위와는 다르게 그 문의 좌편(우리가 보는 것 말고 그 건물이 우리를 바라볼 때를 중심으로 함)이 동문이 되고 우편이 서문이 된다고 합니다.

건물을 중심으로 놓는 것처럼 음택에서도 무덤을 중심으로 방위를 잡지요. 좌청룡, 우백호~

유홍준선생님이 무릎팍도사에서 이야기했듯이

촉석루는 사람냄새로 그 생명력을 더욱 튼튼하게 하는 아름다운 집입니다.

고려말에 불타고 계사순의 때 또 불타고 6,25때 미군기의 폭격으로 불탔다가

진주시민들의 성금으로 다시 건립된 진주정신의 상징, 촉석루!

우리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여성!

천기로서 사당에 모셔진 진실로 위대한 여성.

진주정신을 말할 때 누구도 빼먹지 못하는 의기 논개.

뒷날 많은 이유로 각색되고 덧붙여졌다지만 논개의 그 마음은 더욱 붉기만 하여라~

매천야록을 남긴 황현선생의 글.

뭐라고 해석해 주셨는데 글이 짧아 옮기지 못합니다.

 

산홍...

생각할수록 눈물이 솟구치게 되는 이름입니다.

절세가인으로도 역사의 물결속에서는 그렇게 한 목숨을 버리는 일 말고는 어쩔 수 없었지요.

진주에서 살았던 산홍이 자랑스럽고도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진주성에서는 이렇게 역사의 숨결을 거세게 느끼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고생하신 장일영선생님과 성재권선생님께 고마움을 다시 한번 전합니다.

 

진주성에서 나와서는 함께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진주향교로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