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기념일을 부르는 이름이 다양하게 있다.
결혼 7주년은 화혼식
결혼 25주년은 은혼식
결혼 50주년은 금혼식
더욱 희귀한 60주년은
가장 단단한 보석 다이아몬드의 이름이 붙은 금강혼식이다.
더 이상은 아마 서양에서는 예가 없었던 듯 이름이 정해져 있지 않다.
동양에서는 결혼 60주년을 회혼이라 했다.
회갑잔치만큼이나 즐거운 잔치날이었다.
지난 일요일( 4월 22일 )은
내 친정 부모님의 결혼 70주년 잔치가 있었다.
화환들에는 [축 금강혼식]이라 적혀 있었지만 사실 70주년을 일컫는 언어가 없다보니 60주년을 일컫는 이름을 빌린 모양이다.
우리 엄마 아버지는 올해 86( 임술생 )의 동갑부부시다.
일제강점기 시절, 열여섯의 나이에 결혼식을 올리셨다.
참 많고 많은 사연을 쌓으며 한평생을 해로해 오신 것이다.
그날 가슴이 어찌나 메어오든지.....
슬하에 아들딸 10을 두셨지만
열살안에 하늘 간 불효여식 넷을 빼고 1남5녀가 있다.
그 아래로 손주 14명, 증손주 6명을 두셨다.
그런대로 밥 먹고 사는 자손도 있고
밥벌이가 힘들어 끙끙대는 자손도 있지만
크게 사회에 해악 안끼치고 성실하게 세상살이하고들 있으니
다복한 노인들이라 해도 좋을 듯 싶다.
딸 여덟 줄줄이 낳고 아들 못낳는 한으로 멍에를 지셨던 엄마는
이래저래 한탄스럽고 섧었으리라.
무당에게 빌면 아들낳을까 싶어
"떡꼬집이"라는 무당을 모셔다가 공들이고
부처에 빌면 아들낳는다길래
"용흥사" (걸어서 3~4시간 가야 함) 새벽기도를 100일 하시고
자손없는 조상님 제사모시면 자손줄 열린다하여
무자손 증조할머니(내게는 고조모) 제사를
큰집에 몇년을 애처롭게 빌어 겨우겨우 얻어 모시더니
결국 그 간절한 정성과 기도로 삼신줄을 받아내려
우리 부모님 연세 마흔의 섣달 그믐날 그 귀한 아들하나 낳으셨다.
그 아들이 마련한 70주년 행사는 눈물이 안 날 수 없었다.
저 아들 없었으면 우리 부모님의 가슴이 얼마나 춥고 시렸을까?
새삼 우리 오빠가 고맙고 오빠를 낳아준 삼신(조상님들)이 고마웠다.
손님들의 축하인사를 많이 받으셨는데
그 중에 누군가가 허미수선생의 글씨체를 빌려
[적덕지가 필유여경]이라 쓴 글을 선물해 주셨다.
아직 우리 남매가 다 좋은 모습으로 살고 있지는 못하지만
가문의 이름을 더럽히지는 않았고
크게 이름을 세상에 알리지는 못했지만
사회속에서 나름대로 아름답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내 조상님들과 부모님의 삶이 고운 열매를 꼭 맺을 것이다.
사연이 많은 딸네들의 불효가
언제나 두 노인의 가슴에 못이 되어 있었겠지만
사람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이니 그저 건강하게만 살아라며 축수하신다.
인생을 달관하신 분들의 철학일까?
큰언니의 가슴아픈 삶도
둘째언니의 걱정되는 인생도
셋째언니의 고달픈 생활도
넷째언니의 안쓰러운 모습도
오빠의 힘겨운 어깨도
이 막내딸의 마냥 애달픈 얼굴도
그저 다 안으시고 기도해주시며
고생끝에 낙이 있다, 착하고 부지런히 살면 꼭 복이 온다고 일러주시는 부모님.
내 종교요 내 신앙인 부모님.
나도 내 부모님처럼 세상을 보듬으며 살고 싶다.
내 부모님의 그 따뜻함을 늘 기억하며 세상을 안을 것이다.
세상은 내 조상님들과 내 부모님과 내 언니오빠들을 안아 주었고
내 아들딸을 안아 줄 것이니
내가 이 세상을 먼저 안아야 하지 않겠는가.
결혼 70주년 잔치에 참석하여 축하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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