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억원을 들여 95년 4월 착공, 96년 10월 완공된 경남 합천에 있는 원폭피해자 복지회관. 1650여평 규모로 80여명수용을 수용하며 물리치료사, 간호사 각 1명, 간병인 4명으로 치료보다는 숙식제공 정도. 진료는 인근 지정병원이나 보건소에서 받음 한일양국으로부터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재한피폭자에 대하여는 그동안 옳은 조사 한번 행하여진 일이 없다. 1978년 9월부터 11월 보건사회부에서 일부 실태조사를 하여 2,498명의 피폭자를 확인한 바 있었고, 1979년 이후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비교적 상세한 조사를 실시한 바 있다. 그래도 재한피폭자와 관련하여 그동안 가장 꾸준한 활동을 펴온 곳은 피폭자 자신들의 단체로서 1967년 발족한 한국원폭피해자협회(구- 한국원폭피해자수호협회)이다. 재한피폭자에 대한 지원은 정부차원보다는 민간차원에서, 한국에서 보다는 일본으로부터의 지원이 앞서 왔다. 일본의 민간단체의 움직임으로는 1968년 10월 核禁廣島縣民會議와 民團廣島本部 등 18개 단체가 재한피폭자를 초청 실태조사를 할 목적으로 한국피폭자구호일한협의회를 발족시키었다. 동협의회는 1969년 당시 한국원폭피해자수호협회에 100만원을 기증하였고, 1971년 9월 내과의등 4명의 의료진을 한국으로 파견한 이래 여러차례 의료진을 파견하였다. 核禁會議 등 민간차원에서 1973년 합천에 원폭치료센터를 건립하여 한국정부에 기증하였다. 1984년 8월에는 일본에서 본격적인 치료를 받기 위하여 재차 도일을 원하는 피폭자를 지원하기 위하여 재일교포 김신원 목사와 가와무라병원 원장 가와무라 토라타로우씨가 주축이 된 재한피폭자도일치료히로시마위원회가 결성되어 1984년 12월 합천의 김필례를 첫 초청한이후 96년 현재 240여명의 재한피폭자를 치료하였다.그러나 개인병원이어서 수용인원이 적어 중증환자 아니면 기회를 얻기가 힘들다. 이상과 같은 민간차원에서의 움직임은 재정적인 제약으로 인하여 자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국내에서의 지원으로는 한국교회여성연합회가 연세의료원과 합동으로 1977년부터 피폭자진료사업을 편 것이 최초의 본격적 사업이었다. 진료의 경우 비용의 20%는 본인부담이나, 이 본인부담분은 한국교회여성연합회에서 부담하고 있다. 연세의료원은 2세 이하 진료에 주력하고 있으며, 1982년부터 경희의료원이 피폭자무료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경희의료원은 2명의 의사를 피폭자진료에 배치하고 있으며, 모든 비용은 경희의료원에서 자체부담하고 있다. 서울복음병원 역시 1984년 이래 원폭피해자를 진료하고 있다. 진료비는 일반수가 보다는 싸나 의료보험수가 보다는 비싼 편이지만, 실제 본인부담분은 여기서도 없다. 이상 병원에서 무료진료를 받으려면 한국원폭피해자협회의 추천을 거쳐야 한다. 현재 피폭자의 대부분이 노령이므로 환자의 질환이 단순히 일반적 노화현상인지 원폭후유증에서 오는 것인지를 얼핏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기타 피폭자에 대한 지원으로는 YWCA, 한국교회여성연합회 등에서 피폭자의 자녀 일부에 대하여 장학금을 지급하는 정도이다. 그간 피폭자에 대한 한일양국정부의 지원은 거의 없었다. 일본이 손진두 재판에서 패소한후 1981년 양국합의에 의해 86년까지 349명의 피폭자가 도일하여 단기치료를 받게 한 것이 거의 유일한 실적이다. 1979년 한국의 공화당과 일본의 자민당이 인도적견지에서 재한피폭자의 도일치료지원에 원칙적인 합의를 보아 1980년 테스트 케이스로 10명을 도일시켜 단기치료를 받게한 것이 최초의 실적이었다. 이어「한국보건사회부」와「일본 후생성」은 1981年 12月 1日「재한피폭자도일치료에 관한 합의서」를 체결하였다. 그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도일치료자에 대하여 일본정부는 도일 직후 피폭자건강수첩을 교부한다. ② 입원기간은 2개월을 원칙으로 하고, 최장 6개월까지 연장할 수 있다. ③ 치료받는 자의「왕복여비는 한국측에서 부담」하고, 일본측은 원폭관계법의 규정에 따라 입원 중인 자의 의료급부 및 건강관리수당·특별수당 등을 지급한다. ④ 이 합의서는 5년간 유효하다.(즉 1986년 11월말까지) 이 합의에 따라 1981년에 19명, 1982년에 26명, 1983년에 69명, 1984년에 88명, 1985년에 58명, 1986년에 79명 등 모두 349명이 도일하여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이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우선 년간대산인원이 너무 적어 현재의 모든 피폭자에게 골고루 도움을 줄 수 없으며, 2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으로는 본격적인 치료가 어렵다. 또한 도일대상자는 일본조사단이 선정하는데 도일에 지장이 있다는 이유로 고령자·중증자·결핵환자는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있으며, 극빈자 역시 도일할 경우 가족의 생계문제 등으로 인하여 사실상 도일이 불가능하다.또한 도일여비는 한국정부가 부담하기로 하였으나, 보사부예산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일본측이 수락한 인원도 제대로 채우지 못하여 왔다. 그나마 양국합의는 1986년으로 종결되어 이에 따른 더 이상의 도일치료조차 불가능한 형편이다. 알려진 바로는 일본정부는 도일치료를 계속시키겠다는 의사를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가 더 이상의 연장을 요구하지 않기로 하였다 한다. 2個月의 치료기간이 너무 짧아 실질적 치료를 기대하기 어렵고, 이 문제로 인하여 더 이상 일본측에 머리를 숙이고 싶지 않으며, 도일치료자의 복색이 남루하여 국위에 손상이 간다는 이유 등으로 도일치료의 연장을 요구하지 않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도일치료요구는 구걸행위가 아니라 원폭희생자들의 당연한 권리이며, 도일치료기간이 짧다든가 하여 제대로 치료효과를 볼 수 없다면 오히려 기간연장을 요구하여야 하며, 피폭자의 생활이 곤궁한 것 역시 피폭으로 인한 생활파탄에 원인이 있으므로 그것은 오히려 일본의 책임을 강조시켜 주는 증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정부의 결정은 이해하기 곤란하다. 국내의료진에 의한 치료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도일치료는 일본의 책임을 상징적으로 표시하는 것이므로 절대로 중단되어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1986년부터 약간의 국내피폭자진료예산을 편성, 부산 高神大病院, 대구 嶺南大病院, 평택 韓一病院등에 피폭자진료를 맡기게 하였으나 진료비의 10%는 본인부담이며, 이 때 수가는 영세민의료부조수가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서 사실상 병원측으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1990년 일본 정부가 배상차원이 아닌 인도적 차원에서 40억엔을 지원, 대한적십자사에서 관리하면서 이돈의 일부로 경남 합천에 원폭피해자 복지회관을 건립하였고, 93년 1월부터 월 10만원의 의료보조금 지급과 사망시 150만원의 장례비를 지급하며, 영세민의료부조수가에서 의료보험수가를 적용, 본인부담금을 대신 지원하고 있으나 CT, MRI 등은 제외되므로써 사비를 들여 일본으로 건너가 치료를 받는 경우도 있다. (도일 할 경우 피폭자는 전국 어느 병원에서나 무료로 치료가능하며 월 3만3천5백30엔 의 건강관리수당이 지급됨) 참고로 1968年 김상현 의원이 피폭자구제법을 제안한바 있었으나 보건사회부의 반대로 무산된 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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