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여행안내사 피리/어슬렁-진주 골목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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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汝梗) 2015. 1. 10. 19:57

이달은 비봉산자락에서 어슬렁거려봤습니다.

상세한 장소 설명은 생략할게요~

 

<2015년 1월 10일 3번째 어슬렁 보고>

 

10시 ‪#‎진주여고‬ 정문에서 만난 윤재진, Chun Je Park,Hoon Huh, Miny Ji, 김태영, 남피리 6명이 시작하여 진주여고 역사가 담긴 효주기념관에서 여고의 지난날에 담긴 진주 교육 역사의 자취를 더듬어보았고, 거기서 나와 허만정선생의 흉상과 박경리 시비를 둘러본 후 교정을 나왔습니다.

(진주여고 정문에서 바라본 교정)

(진주여고 설립의 중심에 서셨던 허만정 선생 흉상)

(토지의 작가 박경리의 시비)

 

소위 ‪#‎여고앞국시집‬ 으로 통하는 국시집 두 곳으로 발길을 돌렸지요. 간판없는 원조국시집과 현수막걸린 할매국시집을 지나 버려진 한옥 한채에 담긴 무언의 메시지를 나름대로 읽고는 골목길을 어슬렁 어슬렁거리며 ‪#‎봉알자리‬ 에 도착했지요.

(봉알자리(봉란대)앞에서)

 

봉알자리에는 아쉽게도 문이 잠긴지라 바깥에서 살펴보기만 했네요. 강씨문중과 진주시에서 함께 고민 좀 해서 적절한 관리로 흉물스럽지 않은 관광유적지로 변모시켜주면 좋겠더군요. 진주논개(참진주 페이스북 관리자)님께서도 거기 가보시면 우리가 가지는 바램이 뭔지 아실 거에요~

(구 배영초등학교 건물)

 

다시 이골목 저골목을 어슬렁거리며 진주교육지원청 뒤 ‪#‎배영초등학교‬ 에 갔는데 6.25 당시의 탄흔을 품고 있는 일제시대 건축물을 한참 바라봤네요. 한창 무슨 공사를 하던데 교육박물관으로 꾸밀거라는 말을 풍문으로 들었네요.

교육청 앞마당에 서있는 ‪#‎소년운동가강영호선생‬ 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그 옆에 있는 ‪#‎대사지안내판‬ 을 살펴보며, 어제 올려드린 진주의 풍수에 대한 자료를 각기 상기했겠지요.

다시 발길을 옮겨 ‪#‎진주초등학교‬ 앞에서 옛 중안초등학교가 대한민국 최초의 남녀공학 초등학교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주초등학교 정문 옆 안내판)

 

진주초등학교 서편 담벼락의 담쟁이넝쿨을 구경하며 서부시장으로 발길을 옮겼지요. .

간밤에 열심히 밤마실한 후유증을 가진 저의 열망으로 드디어 ‪#‎서부촌국수‬ 에서 합류한 정연근님과 다함께 맛난 수제비를 먹었는데 김태영씨가 쏜 부추전도 잘 먹었지요. 국시집을 나와서 김태영님과 지민이님은 생업전선으로 떠났습니다

(가마못터 체육공원의 포은 정몽주 유적비)

 

우리는 다시 ‪#‎옛교도소터‬ 로 향했고 그 동네에서 어린 시절 살았던 정연근님의 도움말을 들으며 잠시 둘러본 뒤 ‪#‎가마못터‬ 에 갔습니다. 가마못에 담긴 비보풍수는 이미 예습한 터라 잠시 둘러보기만 했고, ‪#‎지령인걸강하정‬ 이란 싯귀를 남기시어 강하정이란 대명사를 널리 회자시키신 ‪#‎포은정몽주선생‬을 기리는 비석 앞에서 동네 어르신들께서 즐거이 노시는 모습을 뵈며 자리를 옮겼습니다.

(강이식장군을 모신 사당 봉산사 입구에 서 있는 안내판)

 

진주강씨의 도시조 강이식장군의 사당인 ‪#‎봉산사‬ 는 아래에서 바라만보며 잠시 진주강씨에 대한 이야기만 나누고 비봉루를 향해 걸었습니다.

(비봉루 입구에 서 있는 비봉루 안내판)

 

이때 시각 13시. 박경찬 님의 합류와 함께 ‪#‎비봉루‬ 에 들어섰습니다. 은초 정명수선생의 자취가 그대로 서린 비봉루는 일행중에 선생의 후손이 계셔서 좀 더 제대로 어슬렁거리는 시간을 잘 가졌네요. 좀전에 보고 온 가마못터의 포은선생 유적비가 본래 서 있던 곳에 은초선생께서 세우신 표지석을 본 후 드디어 비봉루에 올랐네요.

(비봉루 요사채)

(비봉루와 요사채 사이에 있는 정원에 서 있는 포은 정몽주선생 관련 비석, 은초선생께서 표지석을 세우셨다고 들었습니다.)

(비봉루 위 가운데에 있는 현판. 은초 정명수 선생께서 쓰심)

 

비봉루는 우주본질인 목화토금수 오행에 의거한 오방색으로 아주 화려한 단청으로 단장되어 있었고, 특이하게도 여의주를 입에 문 청룡과 여의주없는 황룡 그 외 작은 용들과 봉황새들이 있었고, 포은선생의 충절이 아로새겨진 선죽교를 비롯한 다양한 그림들이 비봉루를 장식하고 있었습니다. 비봉루에 새겨진 상량문과 중수기뿐만이 아니라 단청문들과 그림들과 용봉에 대한 의미를 쉽게 정리해 설명해주는 안내책자가 발간되어 누구나 그곳을 찾는 이에게 주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가도, 촉석루도 그런 안내책자가 없는데 싶어 혼자 씁쓸히 웃으며 나왔습니다.

(비봉루 모서리에는 봉황새와 용들이 장식되어 있는데 뭐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네요)

비봉루앞에서 기념촬영 한 컷 했는데 다 잘 생기신 남자분들이군요.

(의곡사 일주문)

 

비봉루를 나오는데 호탄동에서 택시 타고 비봉루로 오신 김미숙 님과 따님 전애지양을 위해 다시 비봉루 안내를 하는 사이 체력좋은 3분은 그새 비봉산 정상에 오르셨고 우리는 ‪#‎의곡사‬ 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1923년 우리나라 인권운동의 효시인 형평운동과는 떨어질 수 없는 아픈 역사적 장소기도 한 의곡사, 그곳은 새 대웅전 불사중이었습니다.

 

웅장한 공사현장에서 우리나라 전통건축법이 전승되고 있는 모습을 확인하며 우리는 드디어 대장정을 마무리할 막걸리집을 찾아 헤맵니다.

(어슬렁 어슬렁~)

 

곳곳을 들러 헛방하고 결국 큰길가 ‪#‎박가시락국‬ 에서 땡초전과 막걸리를 앞에 두게 되었네요. 목을 축이며 오늘 우리가 어슬렁거린 곳들을 담은 사진을 통해 잠시 정리 후 여러 이야기를 나눴고 어슬렁거리기 시작한 10시부터 6시간이 지난 16시에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으나 녹음을 못하여 여기에 되살리지 못함을 양해바라며, 간략한 보고를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