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장/내 일기장

2021년 5월 19일 일기

여경(汝梗) 2023. 5. 19. 23:22

#사월초파일

북부여 해모수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부처님오신날로 자리하였다고 한다. 각 불교국가에서는 전통적으로 부처님오신날이 조금씩 다른데, 세계불교도대회에서 공식적으로는 양력 5월 15일로 정했다는 말도 들은 듯 하다.

마치 기독교에서 예수님오신날을 태양신 미트라의 축일로 맞춘 것처럼, 문화는 그렇게 녹아들며 자리잡는 것이지 싶다.

종교를 문화 그 이상의 생명으로 여기는 분들에게는 이 무슨 헛소리고 모욕인가 싶기도 하겠으나, 인류역사가 걸어온 자죽을 약간의 거리를 두어 바라보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인간 석가와 인간 예수를 더 사랑하고 숭앙하게 된다. 그들을 받들며 이룩해온 고귀한 인류문화 이면에 피를 뿌린 역사는 또 별개이다.

졸가리없는 헛소리는 이만하고, 오늘은 어쨌거나 부처님오신날이다. 그런데 내게는 부처님가신날이기도 하다.

부처님오신날이던 2010년 그날 부모님을 뵈러 무실에 갔다. 대문을 들어서며 '엄마~' 를 불렀는데 대답이 없으시다. 방안에도 뒤뜰에도 암서정 그 어디에도 안 계신다. 하마 절에 다녀오셨을 시각인데...

오빠한테 전화를 넣어본다. '엄마아부지가 집에 안 계시네?"
"어~, 아버지가 좀 안 좋아서 병원에 계신다."
놀래서 얼른 병원으로 가보니, 아버지는 말없이 눈 감고 누워 계신다. 엄마가 아침밥상 차려서 방에 들어가도 안 일어나셨다고 한다.  그 새벽에 꿈에서 할배가 들어오셔서 아버지 코에 입을 대고 영혼을 훅 빨아들이시더라는 엄마의 전언에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엄마를 집에 모셔드리고 아버지 침대옆을 지켰다. 마음을 가지런히 빗어 가라앉히며 아부지 손톱과 발톱을 깎아드렸다.

집에 두고 온 아이들을 챙기러 저녁에 진주로 왔다가 담날 일찍 애들을 태우고 다시 갔다. 곁에서 지켜본 우리아부지는 미동도 없이 고요했다. 미련 부리느라 콧줄로 넣어드리는 죽을 목구멍에서 거부하시더니, 발에서부터 뜨겁기 시작했다. 그 열기가 온몸을 태우는가 싶더니 다시 발에서부터 식어가셨다. 그렇게 조용히 가버리셨다. 내 부처님 한분의 마지막날이 사월 초아흐레였고 그 다음해부터 사월초파일은 아부지 제사가 드는 날이다. 물론 이제는 엄마 제사가 더 앞날이다보니 엄마기일에 같이 모시느라 초파일날은 그저 이렇게 아버지 생각만 하고 만다.

내 부처님이신 아부지와 엄마를 그리며, 봉은암에 갈 준비를 한다. 따라나서려는 딸내미가 양치질하는 소리가 들린다.

부처님 오신 날,
부처님 가신 날,
세상 모든 부처님 전에 합장합니다.